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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길은... 천천히...똑바로.... 배워서 남에게도 주자... [http://cafe.daum.net/nalssimal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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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 주인과 손님

2011. 4. 17. 13:41 | Posted by 날씨맑음

[함부로 하지 말자]

아파트에 누가 사는지?
숲에는 누가 사는지?
아파트에 누가 종종 찾아오는지?
숲에 누가 종종찾아 가는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의하면 주인과 손님이 명백함

그런데...
사람은 숲의 주인인것 마냥 함부로 함.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소유의 개념과 욕심으로 인해 자연이 죽어감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이 숲의 수많은 종을 죽이고 있음  

 





함께살기

2009. 5. 28. 14:51 | Posted by 날씨맑음
낙엽송의 벌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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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의 가르침

2009. 3. 6. 16:53 | Posted by 날씨맑음
덩굴식물인 칡이나 다래, 사위질빵, 댕댕이덜굴 등은 스스로 높게 자라지 못한다. 위로 높게 자라려면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 가야 한다.
덩굴식물은 햇볕만 충분하다면 바닥으로 깔려 자라는 것도 나쁘지 않다. 헌데 위로 자라는 것은 덩굴식물의 습관인 것이다. 이 습관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은 오랜 기간동안 길들여진 습관으로 "햇빛찾기" 때문이다. 나무 아래에 깔려 있는 덩굴 식물이 광합성을 위해 햇볕을 보려면 당연히 나무보다 위로 올라가야 한다.

덩굴식물은 주변의 나무를 지주삼아 햇볕을 찾아 올라감으로 인해 도움을 받지만 나무는 덩굴식물에게 별로 도움을 받는게 없다. 오히려 피해 만주는 경우가 더 많다. 이렇듯 한쪽 이득을 보며 사는것을 "편리공생"이라 한다
이 편리공생이 지나치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주나무를 부러뜨려 공멸로 가는 최악의 경우가 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경쟁속에는 공생도 있지만 편중된 공생은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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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과 댕댕이덩굴이 어린 뽕나무를 감아 올라가다 덩굴의 무게에 의해 줄기 부러져 버렸다]

열매 예찬 2

2009. 2. 16. 08:40 | Posted by 날씨맑음
가끔 어르신들이 하는 얘기중에 "올해는 씨앗이 많어!" 또는 "올해는 씨앗이 개락이여!" 한다.
식물이 씨앗을
많이 만들고 적게 만들고에 대한 육안으로 보이는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소위 천기를 본다는 도사들은 이런 자연 현상을 통해 내년의 길흉을 측정했고 특정한 식물의 창궐이나 곤충의 생멸을 보고 점을 치곤했다. 어찌 보면 자연을 살펴 점을치는 그들이 예전엔 생태학자였으리라. 정말로 자연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을 예측할수 있고 그리고 미리 대비할 수 있다

씨앗이 많다는 것은 새들의 먹이가 많아 내년에 새들이 많아지게 되고 새들이 많으면  곤충이나 애벌레를 많이 잡아 먹어 작물에 피해가 덜할 것이니 풍년의 조짐을 예상 하는 것이다. 씨앗이 많으면 동물들의 먹이감이 많아져 죽지않고 겨울을 넉넉히 나고 봄이 되어도 마을로 내려오지 않아 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니 풍녕이 들것이고, 씨앗이 적으면 동물들은 열매를 생산하는 기간인 한 봄에 부족한 먹이를 찾아 농가로 내려와 농사를 망칠 것이니 밭농사의 흉년을 예측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자연을 간파하는 능력을 통해 도사들은 새들과 짐승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는 작물을 심도록 권장하거나 농사 대신 돼지, 닭을 사육하도록 권장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일들을 주관하는 사람이 마을의 촌장이고 촌장님은 말그대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마을의 어르신으로 천기와 음양(이 두가지를 '자연'이라 한다)에 능통한 사람이다.

결국 씨앗으로 인해 사람들의 길흉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현세의 사람들은 모른다. 아니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왜? 천년만년 살것이라는 착각에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이 주는 혜택을 공짜로 조금씩 파먹고 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식물이 만들어 낸 산물을 직접 재배하지 않고 돈주고 사는 먹는 세대인 우리의 후손은 선조가 망가뜨린 자연을 부여안고 통곡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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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가시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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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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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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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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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미래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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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풀]

동물이 정해진 길로 다니는 이유

2009. 1. 15. 15:54 | Posted by 날씨맑음

산짐승을 쉽게 잡아본 사람들은 산짐승들이 어리석다고 얘기한다. 산짐승이 다니는 길이 정해져 있어 올무를 그곳에 놓으면 쉽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이 정해진 길로 다니는 이유가 뭘까?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기 위함이다. 정해진 시간에 세끼 식사를 하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다. 사람외의 동물은 하루에 한끼를 먹을 수 있고 일주일에 한끼를 먹을 수도 있다. 불규칙한 식사로 인해 동물은 항상 에너지가 충분하지 못하다. 그 한끼의 식사를 구하기 위해 동물은 자신의 서식 구역을 정한다. 자신의 구역을 정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동물 자신이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소비하며 먹이 활동을 할수 있는 범위를 스스로 정하거나 다른 동물과 싸워 쟁취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동물은 자신의 구역을 정해 놓아야 최소한의 에너지 소비로 먹이 활동을 하거나 자신의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 공생을 위함이다. 동물이 자신의 구역을 정하게 되면 구역내의 가장 안전하고 먹잇감이 있을 만한 곳에 표식을 하게된다. 그리고 자신이 표식한 곳을 다니게 되는데 이때 동물의 흔적이 남게 되면서 사냥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동물은 자신의 구역을 지키기 위해 주기적으로 표식을 하며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이 표식과 흔적은 다른 인접 동물에게 자신의 구역임을 알리는 무언의 언어인 셈이다. 이 무언의 언어로 인해 동물들은 서로의 충돌을 피하고 같은 공간에서 공생을 할수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며 공생을 하는 동물들은 욕심이 없고 정직하다. 그런 동물을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한다.

이 세상에는 사람만큼 이기적인 동물은 없다. 모든 사물과 생명을 사람의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동물의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한다면 동물은 두렵고 더럽고 어리석은 존재가 아닌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친구인 것이다

나무껍질 (수피) - 방어와 공생

2008. 12. 30. 17:23 | Posted by 날씨맑음
나무껍질(수피)이 상해를 입으면 나무는 온갖 미생물이나 바이러스와 곤충의 공격을 받게 되고 나무는 본능적으로 이들을 막기 위해 방어물질을 만들어 내고 스스로 치료한다.
침엽수의 잎에서 피톤치드나 테르펜과 같은 휘발성의 정유 물질을 내뿜는 것부터 소나무의 송진과 같이 방어물질이자 치료물질을 노골적으로 뱉어내기도 한다. 활엽수의 경우에도 차단막이 생길때 까지 수액을 배출하여 외부의 침입을 막는다.

나무는 겨울에 상해를 입었을 경우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당하게 된다. 나무는 가을을 지나면서 겨울을 지낼 준비를 마치는데 그 과정에서 향후에 상해를 입을 경우를 대비하지 않기 때문에 겨울에 상해를 입게 되면 스스로 치료가 되지 않으며 상해를 입은 곳은 동해(冬害)를 입게 되어 나무의 살아 있는 조직인 형성층이 파괴되고 겨울내내 상해를 입은 곳을 중심으로 점점 어는 부위가 많아지게 되어 세포가 죽고, 얼음이 녹으면서 언 부위의 수분을 달아나 말라버리게 되어 탈피현상이 일어난다
 
봄이 되면 겨우내내 얼었던 곳은 해동이 되면서 겨우내 배고푼 미생물과 곤충의 집중공략으로 나무가 상하기 시작하고 나뭇가지로 정상적인 물과 영양공급이 어려워 말라 죽게 되는 것이다.

나무의 자연적 상해로써 추위와 함께 바람도 원인이 된다. 여름철 태풍은 나무에게 가장 큰 시련중에 하나로 잎이 달려 있는 가지의 경우 부러지거나 휘어져 나무의 조직이 망가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때 수피가 찢기거나 갈라져 외의 침입을 받게 된다. 또한 겨울철에는 한껏 가지가 얼어 있는데 바람이 불게되는 쉽게 부러지고나 수피가 갈라지는 경우가 생긴다.

나무는 이러한 자연적이고 인위적인 상해에 대비하여 내부시스템인 방어물질과 함께 외부 방어시스템인 수피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나무의 껍질에는 지구 인구보다 더 많은 생물이 살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 수백억마리의 미생물이 껍질 속에서 살고 있는 이유는 껍질에서 기본적으로 영양과 수분을 얻을 수 있으며 땅보다는 안전하고 번식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생물들은 나무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나무에 해를 입히기도 한다.

나무껍질은 미생물에게 편안한 안식처이자 먹이 제공자이기 때문에 또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공간이라 할수 있다.

우리가 나무를 보는 것은 곧, 생태계를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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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방어 물질인 잣나무 송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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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인위적으로 해를 끼쳐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경우....외부 방어체계가 무너지 경우이다]  

열매 예찬 1

2008. 10. 7. 14:39 | Posted by 날씨맑음

설악산의 가을은 일찍 찾아온다. 여름의 향연으로 물들었던 꽃들의 축제는 가을의 찬서리에 사그러지고 남아 있는 들풀은 숨가쁘게 씨앗을 퍼뜨리고 있다.

 식물의 열매에는 우주가 담겨져 있다. 딱딱하고 죽은 것 같지만 작은 씨앗에서 아름드리 나무도 자라고 어여쁜 애기똥플도 자란다. 작은 하나의 씨앗은 생명을 담고 있고 또다시 자라 자신과 똑같은 수백 수천의 생명을 만든다.
식물은 이렇게 자신의 분신을 열배 백배로 퍼뜨리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사람이 먹지도 못하는 흙에서 말이다.

식물은 자신의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우선 맛있는 열매를 만든다. 사과의 과육은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여 고라니가 좋아하고, 마가목의 빨간 열매는 달콤하여 새들의 먹이가 된다. 열매를 먹은 고라니와 새들은 다른 장소로 이동하여 미처 배안에서 소화되지 않는 씨앗을 배설한다. 이런 방법으로 씨앗이 퍼지는 것이다.

식물은 열매를 통해 동물에 영양을 공급하고 동물은 배부르게 먹은 댓가로 씨앗을 퍼뜨리는 역할을 함으로 서로 공생관계에 있는 것이다. 숲에 동물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사람은 식물의 과육만 홀랑 빼먹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얄미운 존재다  

식물의 씨앗 그 자체는 또한 고단백질이 영양소로 동물의 먹이감이 된다. 먹이감이 없는 한겨울에 동물의 먹잇감은 당연 씨앗인 것이다. 지구의 숲이 유지되는 최소 요건은 식물 자신이 잉태시킨 씨앗의 1%만 생존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숲은 불과 1%의 가능성 만으로도 존속해 가는 위대한 생명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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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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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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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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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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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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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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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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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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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당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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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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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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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엉겅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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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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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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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발톱나무]

영양공생 [營養共生, syntrophism]

2007. 3. 2. 14:18 | Posted by 날씨맑음

[백과사전]

서로 다른 종류의 생물들이 필요한 영양공급을 위해 서로 의존하는 것.

어떤 개체가 생산하는 대사의 중간산물이나 최종산물이 다른 개체에 필요한 물질이 된다. 영양공생의 예는 한 생태계 내에 섞여 있는 여러 개체군 안에서 관찰할 수 있다. 뿌리혹박테리아는 오리나무나 콩과식물의 뿌리에 살면서 식물로부터 영양분인 탄수화물을 얻는 대신 대기 중의 질소(N2)를 고정, 암모니아(NH3)를 식물에 제공하여 단백질·핵산 등을 합성하게 한다. 또한 동물의 경우에도 볼 수 있는데 소와 같이 반추위를 가지는 동물의 위 속에 사는 세균들은 소가 분해할 수 없는 셀룰로오스나 리그닌을 분해해 소가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동시에 자신은 위로부터 영양분을 제공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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