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하지 말자]
아파트에 누가 사는지?
숲에는 누가 사는지?
아파트에 누가 종종 찾아오는지?
숲에 누가 종종찾아 가는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의하면 주인과 손님이 명백함
그런데...
사람은 숲의 주인인것 마냥 함부로 함.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소유의 개념과 욕심으로 인해 자연이 죽어감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이 숲의 수많은 종을 죽이고 있음
[함부로 하지 말자]
아파트에 누가 사는지?
숲에는 누가 사는지?
아파트에 누가 종종 찾아오는지?
숲에 누가 종종찾아 가는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의하면 주인과 손님이 명백함
그런데...
사람은 숲의 주인인것 마냥 함부로 함.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소유의 개념과 욕심으로 인해 자연이 죽어감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이 숲의 수많은 종을 죽이고 있음
소위 천기를 본다는 도사들은 이런 자연 현상을 통해 내년의 길흉을 측정했고 특정한 식물의 창궐이나 곤충의 생멸을 보고 점을 치곤했다. 어찌 보면 자연을 살펴 점을치는 그들이 예전엔 생태학자였으리라. 정말로 자연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을 예측할수 있고 그리고 미리 대비할 수 있다
씨앗이 많다는 것은 새들의 먹이가 많아 내년에 새들이 많아지게 되고 새들이 많으면 곤충이나 애벌레를 많이 잡아 먹어 작물에 피해가 덜할 것이니 풍년의 조짐을 예상 하는 것이다. 씨앗이 많으면 동물들의 먹이감이 많아져 죽지않고 겨울을 넉넉히 나고 봄이 되어도 마을로 내려오지 않아 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니 풍녕이 들것이고, 씨앗이 적으면 동물들은 열매를 생산하는 기간인 한 봄에 부족한 먹이를 찾아 농가로 내려와 농사를 망칠 것이니 밭농사의 흉년을 예측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자연을 간파하는 능력을 통해 도사들은 새들과 짐승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는 작물을 심도록 권장하거나 농사 대신 돼지, 닭을 사육하도록 권장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일들을 주관하는 사람이 마을의 촌장이고 촌장님은 말그대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마을의 어르신으로 천기와 음양(이 두가지를 '자연'이라 한다)에 능통한 사람이다.
결국 씨앗으로 인해 사람들의 길흉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현세의 사람들은 모른다. 아니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왜? 천년만년 살것이라는 착각에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이 주는 혜택을 공짜로 조금씩 파먹고 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식물이 만들어 낸 산물을 직접 재배하지 않고 돈주고 사는 먹는 세대인 우리의 후손은 선조가 망가뜨린 자연을 부여안고 통곡을 할 것이다.
[청가시덩굴]
[낙엽송]
[화백]
[물갬나무]
[청미래덩굴]
[차풀]
산짐승을 쉽게 잡아본 사람들은 산짐승들이 어리석다고 얘기한다. 산짐승이 다니는 길이 정해져 있어 올무를 그곳에 놓으면 쉽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이 정해진 길로 다니는 이유가 뭘까?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기 위함이다. 정해진 시간에 세끼 식사를 하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다. 사람외의 동물은 하루에 한끼를 먹을 수 있고 일주일에 한끼를 먹을 수도 있다. 불규칙한 식사로 인해 동물은 항상 에너지가 충분하지 못하다. 그 한끼의 식사를 구하기 위해 동물은 자신의 서식 구역을 정한다. 자신의 구역을 정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동물 자신이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소비하며 먹이 활동을 할수 있는 범위를 스스로 정하거나 다른 동물과 싸워 쟁취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동물은 자신의 구역을 정해 놓아야 최소한의 에너지 소비로 먹이 활동을 하거나 자신의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 공생을 위함이다. 동물이 자신의 구역을 정하게 되면 구역내의 가장 안전하고 먹잇감이 있을 만한 곳에 표식을 하게된다. 그리고 자신이 표식한 곳을 다니게 되는데 이때 동물의 흔적이 남게 되면서 사냥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동물은 자신의 구역을 지키기 위해 주기적으로 표식을 하며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이 표식과 흔적은 다른 인접 동물에게 자신의 구역임을 알리는 무언의 언어인 셈이다. 이 무언의 언어로 인해 동물들은 서로의 충돌을 피하고 같은 공간에서 공생을 할수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며 공생을 하는 동물들은 욕심이 없고 정직하다. 그런 동물을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한다.
이 세상에는 사람만큼 이기적인 동물은 없다. 모든 사물과 생명을 사람의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동물의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한다면 동물은 두렵고 더럽고 어리석은 존재가 아닌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친구인 것이다
나무껍질은 미생물에게 편안한 안식처이자 먹이 제공자이기 때문에 또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공간이라 할수 있다.
우리가 나무를 보는 것은 곧, 생태계를 보는 것입니다.
[내부방어 물질인 잣나무 송진]
[사람이 인위적으로 해를 끼쳐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경우....외부 방어체계가 무너지 경우이다]
설악산의 가을은 일찍 찾아온다. 여름의 향연으로 물들었던 꽃들의 축제는 가을의 찬서리에 사그러지고 남아 있는 들풀은 숨가쁘게 씨앗을 퍼뜨리고 있다.
식물의 열매에는 우주가 담겨져 있다. 딱딱하고 죽은 것 같지만 작은 씨앗에서 아름드리 나무도 자라고 어여쁜 애기똥플도 자란다. 작은 하나의 씨앗은 생명을 담고 있고 또다시 자라 자신과 똑같은 수백 수천의 생명을 만든다.
식물은 이렇게 자신의 분신을 열배 백배로 퍼뜨리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사람이 먹지도 못하는 흙에서 말이다.
식물은 자신의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우선 맛있는 열매를 만든다. 사과의 과육은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여 고라니가 좋아하고, 마가목의 빨간 열매는 달콤하여 새들의 먹이가 된다. 열매를 먹은 고라니와 새들은 다른 장소로 이동하여 미처 배안에서 소화되지 않는 씨앗을 배설한다. 이런 방법으로 씨앗이 퍼지는 것이다.
식물은 열매를 통해 동물에 영양을 공급하고 동물은 배부르게 먹은 댓가로 씨앗을 퍼뜨리는 역할을 함으로 서로 공생관계에 있는 것이다. 숲에 동물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사람은 식물의 과육만 홀랑 빼먹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얄미운 존재다
식물의 씨앗 그 자체는 또한 고단백질이 영양소로 동물의 먹이감이 된다. 먹이감이 없는 한겨울에 동물의 먹잇감은 당연 씨앗인 것이다. 지구의 숲이 유지되는 최소 요건은 식물 자신이 잉태시킨 씨앗의 1%만 생존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숲은 불과 1%의 가능성 만으로도 존속해 가는 위대한 생명체이다
[백과사전]
서로 다른 종류의 생물들이 필요한 영양공급을 위해 서로 의존하는 것.
어떤 개체가 생산하는 대사의 중간산물이나 최종산물이 다른 개체에 필요한 물질이 된다. 영양공생의 예는 한 생태계 내에 섞여 있는 여러 개체군 안에서 관찰할 수 있다. 뿌리혹박테리아는 오리나무나 콩과식물의 뿌리에 살면서 식물로부터 영양분인 탄수화물을 얻는 대신 대기 중의 질소(N2)를 고정, 암모니아(NH3)를 식물에 제공하여 단백질·핵산 등을 합성하게 한다. 또한 동물의 경우에도 볼 수 있는데 소와 같이 반추위를 가지는 동물의 위 속에 사는 세균들은 소가 분해할 수 없는 셀룰로오스나 리그닌을 분해해 소가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동시에 자신은 위로부터 영양분을 제공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