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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장상'에 해당되는 글 47

  1. 2007.10.19 논뚝 콩세알(2)
  2. 2007.10.19 논뚝 콩세알(1)
  3. 2007.10.19 까치밥
  4. 2007.10.19 배려
  5. 2007.10.19 돌아가야 하는 길에 서서
  6. 2007.10.11 공존의 단상
  7. 2007.10.10 마당과 빗자루
  8. 2007.10.05 잠아의 기쁨

논뚝 콩세알(2)

2007. 10. 19. 16:52 | Posted by 날씨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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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논둑에 콩을 심은 이유는 뭘까요?
예나 지금이나 논뚝경계와 논뚝의 넓이 때문에 각자 주인들끼리 다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예전엔 논도둑이란 말이 있듯이 게으른 농사꾼은 부지런한 농사꾼한테 논마지기를 를 야곰야곰 빼앗겼다는 것이지요.

이른 봄 부지런한 농사꾼은 지난 가을과 겨울에 뭉그런진  경계논뚝을 보수를 하게 되는데.... 이때 슬쩍 내쪽의 논뚝 흙을 한뼘더 퍼서 논뚝에 올립니다. 허면 지난해보다 경계논뚝이 좁아졌겠지요. 나중에 온 게으른 농부가 논뚝을 걸어가다보니 좁걸랑요. 허니 제 논의 흙을 퍼서 걸어 다닐수 있을 만큼의 논뚝을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을 몇년 반복하다 보면 부지런한 농사꾼의 논은 해가 갈수록 한뼘씩 늘어나는데 게으른 농사꾼은 그걸 눈치를 채지 못하고 소출도 적어지니 결국 다른 소작농꾼으로 대체되는 것이지요.
이때 대체된 농사꾼중에 똘똘한 놈이 나타난 것입니다. 부지런 하지는 않지만 눈치가 빨라 뻔한 속임수를 두고 직접 말을 하지 못하니 꾀를 내어 표식 할 만한 것으로 찾은게 콩이지요. 콩은 아무데서나 잘 자라니까요.

원래 콩은 익으면 비어서 말리고 도리깨로 털게되어 있답니다. 그러니 콩을 벤자리는 표식이 되고, 논뚝의 콩자리가 분명 가운데 있었는데 그것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으면 부정을 저지른 흔적이라는 것이지요. 헌데...부지런한 농사꾼은 미리 그런 상황을 알고 그 짓을 그만두고 자신도 나란히 콩을 심게 된것이지요.

논뚝의 콩 경계는 이런 경쟁이라는 이유에서 나오게 된것이지요. 믿거나 말거나 ^^

조상들이 뚝에 콩을 심는 이유중에는 자연농시 논으로 들어갈 해충들이 콩에서 자리를 틀게됨으로써 병충해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해충뿐만 아니라 콩에는 익충이 더 많이 산다고 합니다. 특히 거미류는 자연농에 일등공신이지요. 이런 부분은 현대의 유기농이라는 과학영농에서도 입증을 한바 있습니다.

- 날씨맑음 -

논뚝 콩세알(1)

2007. 10. 19. 16:42 | Posted by 날씨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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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은 논둑 콩을 꼭 세알씩 심었다고 합니다.
한 알은 땅속의 곤충들을 위하여, 또 한 알은 새들을 위하여, 마지막 한 알은 그들의 양식을 위하여....

재미있지요? 콩세알을 심은게 정말 그러해서 인걸까요? 꿈보다 해몽이겠지요...
옛성현들의 지혜로 치부하고 싶습니다. 유독 동양권중에서 우리나라가 3 이라는 숫자에 집착을 많이 했지요. 또한 홀수에 특히 강한 민족이 우리민족이지요
.
여기서 3 이란 하늘,땅,인간의 신(神)을 뜻하기도 한답니다.

3에 대한 농사꾼의 지혜중에 하나는 한개의 콩대보다 두개의 콩대가 쓰러지 않으며 두개의 콩대보다 3개의 콩대가 더 안전한다는 것이고, 하나는 경쟁이 없어 콩이 열리가 어렵고, 둘은 상생하기 쉽고, 셋은 되어야 경쟁이되어 콩이 잘 열린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설은 3대의 콩대중에 한개의 콩대는 소가 먹고 또한개의 콩대는 들짐승이 먹고 마지막 콩대는 사람이 먹는다 하지요.

옛성현들의 지혜와 해학을 볼수 있는 즐거움 입니다

- 날씨맑음 -

까치밥

2007. 10. 19. 16:38 | Posted by 날씨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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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요. 사실 과학적 근거도 있고 생태적 관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넉넉함이나 생명주의라는 거창함을 떠나서라도 자연과의 "나눔" 이라는 작은 의미부터 시작을 하지요.

지금은 과학 영농이라하여 영농기계가 모든것을 다합니다. 콤바인이 모도 심고 탈곡도 하지요. 농산물 값이 워낙 찬밥이니 싹싹 긁어 모아 팔아도 돈이 되지 않지요.
그러니 콩한조각, 쌀한톨이라도 더 거둘 욕심에 나락에 대해 철저합니다. 물샐틈없이....

기계영농이 아닌 그 옛날엔 논에서 밭에서 탈곡을 했고 왕겨니 콩대니 모두 논밭에 볏가래나 콩단을 두고... 겨울이 지나 태우거나 거름으로 사용을 했지요. 지금은 어떤가요? 논엔 볏단도 없고 콩밭엔 콩단이 없습니다. 혹시 바닥에 떨어질까봐 널다란 비닐을 깔고 콩을 털고 콤바인 탈곡은 볍씨하나 흘리지 않고 깨끗하게 거둬 갑니다.

이게 지금의 人心입니다. 새들을 위해 좀 남겨두면 좀 어때서....봄여름가을 내내 해충 잡아주며 그래도 고생했는데,,,,겨울을 배골지 말고 날 정도는 줄수도 있는데...!!!

좀...서글프죠?

한여름 참새는 뗴거지로 논과 밭에 몰려다니면서 애벌레나 해충을 잡아 먹지요. 가을이 되면 까치와 까마귀는 겨울을 나기 위한 지방저장을 위해 논밭을 다니면서 익충이건 해충이건 보이고 닥치는대로 먹어댑니다.
이렇게 작지만 조그만 수고를 했는데....

까치밥중에 감은 조류나 곤충의 만병통치약이라 합니다. 감의 떫은 맛과 단맛이 겨울 동안의 부족한 비타민과 호르몬 분비 대사를 움직이데 영향을 준다고 하네요.

그래도 감이라도 떨구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걸 보면 훈훈합니다^^

- 날씨맑음 -

배려

2007. 10. 19. 16:33 | Posted by 날씨맑음

내집을 짓을 때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중에 하나가 집의 방향이다.
집의 방향은 집의 내구성과 열효율과 냉난방 비용에 영향을 준다.
또한 기거를 위한 쾌적도와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종국엔
사람의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무를 식재할때 침엽수의 경우 기본적으로 방향을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원래 남쪽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는 소나무를
아무렇게나 대충 심어 북쪽을 향하고 있다면 그 소나무는 온전할까?
나무를 캘때 나무의 가지가 어떤 방향을 향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모른다고 치더라도 최소한 심어질 위치의 환경에서 원래 가지가
뻗었던 남쪽의 환경을 맞춰 주어야 그마나 온전할 것이다.

작은 배려는 모두를 행복하는 샘물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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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곰취샘의 평화의댐 소나무 두그루)

나무가 가지를 뻗는 방향은 햇빛 때문이고, 그 소나무 주변에
다른 나무로 인해 가지를 뻐는 방향이 달라질수 있다.
같은 장소의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있어도 가지가 향하는 방향이
다른 나무로 인해 달라 질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무를 옮겨 심을 때 원래의 환경에 대한 정보를 함께
재공하여 이동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돌아가야 하는 길에 서서

2007. 10. 19. 16:28 | Posted by 날씨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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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시인에게의 시골은 휴양의 의미로 바뀌어 있습니다. 10여년전만 해도 시골은 고향의 의미로 정신적.물질적으로 넉넉함과 푸근함을 대표하는 공감용어중에 하나였습니다.
 
수수깡으로 엮은 심벽집의 흙을 갉아 먹고, 툇마루 봉당에 주저 앉아 땅강아지를 가지고 놀고, 대문옆 외양간의 소 울음소리에 낮잠이 깨고, 감자밭에 개구리잡이로 하루를 보내고, 수양버들 늘어진 봇도랑에서 족대질 하던...시골.
 
도시인들이 동경하는 시골의 모습은 어떤가요? 어떤 모습을 그리며 시골로 돌아가려 할까요? 그들은 시골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까요? 자신이 생각하는 시골을 그려 본 적은 있는지요?  
 
왜 시골로 가려하는가? 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 전에 이러한 물음에 대한 자신의 답을 한번쯤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혹시 돌아가야 하는 길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생각해 보길 간곡히 권합니다.
 
내가 기억하는 시골의 단상은 항상 흙냄새과 소똥냄새 입니다.

- 2007년 봄 어느날 -

공존의 단상

2007. 10. 11. 11:29 | Posted by 날씨맑음
이런 자문을 해봅니다.
"사람이 자연을 숲을 그대로 놔준적이 있는가?"

자연의 생리이자 동물의 생리중 으뜸은 "먹는것"이다.
배골아 죽을 지경이면 사람인들 뭐가 생각나겠는가?
멧돼지가 재미로 파헤치겠는가?

숲은 사람의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 그곳에 사는 동물의 것이다
즉, 멧돼지의 집은 숲이고 화장실도 숲이고 밥상도 숲이라는 얘기다

헌데 사람들이 숲에서 그들의 먹이를 가로챘고 빼앗고 파괴했다
밥그릇을 빼앗긴 사람의 모습을 본적이 있는가?
밥그릇을 빼앗긴 사람의 모습이 곧 멧돼지가 파헤쳐논 모습일지라.

자연과의 "공존"을 논하는 사람은 상당히 건방진 사람이다.
자연의 찬바람 앞에서 옷깃을 여미는 인간이 공존을 논할 자격이 있을까!

- 아침나절에 횡설수설 -

마당과 빗자루

2007. 10. 10. 14:51 | Posted by 날씨맑음

옛말에 머슴들이 빈둥거리는 것을 보고 상머슴이 하는 말이 있다.
"할일 없으면 마당이나 쓸어 이눔아!"
티끌 하나없이 깨끗한 대감집의 큰 마당 봉당 모두 아침에 치웠건만
오후되어 쉴틈도 주지 않고 빈둥거린다고 마당이나 쓸라고 한다.

햇살좋은 봄날 오후..어느 양반댁이건 이런 작은 실갱이가 오간다.
상머슴은 왜 마당을 쓸라고 했을까? 아침에 쓸은 마당을 왜?
가장 큰 이유는 빈둥거리는 머슴의 잡념을 없애려 하는 것이고...

또하나의 이유에는 전혀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그 젊은
큰머슴은 모른다.

작년에 바람에 날려온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풀씨들이 겨우내내
앞마당 뒷마당 봉당 툇마루 대문턱 담구석 등등에 소리없이 쌓인다.
봄이 찾아와 은근한 비라도 내려주면 여지없이 씨앗은 물을 머금고
머슴 몰래 뿌리를 내민다. 살짝 내린 뿌리를 땅에 짚어보고 여차
싶으면 머슴의 허락도 없이 뿌리를 박아버리는 것이다.
큰머슴이 보지 못하는 사이를 틈타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이튼날 아침...
큰머슴이 싸리빗자루를 드는 순간 뿌리내린 씨앗은 바짝 긴장을 한다.
빗자루가 한번만 스쳐지나가도 뒤집어 지는 것이다. 힘겹게 내린 뿌리가
하늘로 벌러덩 눕게되는 것이다. 왼만한 자갈도 싸리빗자루 질을 당해
낼수 없다는 것은 마당 친구들은 다 안다. 해서..씨앗의 생은 거기까지다. 

머슴의 빗자루 짓은 다름 아닌 잡초 제거를 위한 원천행태인 것이다.
머슴이 부지런하여 아침엔 몸도 풀 겸하여 비질을 하고 저녁에는
낮에 받은 스트레스와 격한 노동의 근육을 갈무리하고자 비질을 하는 것이라!
그러면 마당안에 있는 씨앗들은 덩덜아 죽을 맛이려니!!!

그래서 내말이..."잡초를 없애려면 비질을 해라!"

- 날씨맑음 -

잠아의 기쁨

2007. 10. 5. 12:39 | Posted by 날씨맑음
 
 
봄비가 내린 계곡은 물이 불고 계곡 안의 바위 위에는 털복숭이 애벌레들이 물을 건너지 못해 안절부절이다. 나무 위에서 떨어진 것으로 판단되어 위를 올려다 본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층층나무가 이 털복숭이 애벌레의 공격을 받아 싹쓸이 테러를 당한 것이다. 온전한 잎이 하나도 없이 주맥만 남고 모두 싹쓸이를 당한 것이다. 주변의 나무를 보니 모두 온전한데 이 층층나무만 당한 이유가 뭘까?
 
두달후 궁금하여 찾은 층층나무에는 나뭇잎이 무성하다. 다행한 웃음이 먼저 나왔고 잎을 다시 피워준 나무가 대견했다.
 
층층나무는 어떻게 나뭇잎은 피웠을까? 나무는 줄기 껍질 속에 눈을 숨기고 있다가 정아나 측아가 손상되거나 위급할 때 터지는 잠자는 눈..잠아(潛芽 dormant bud)를 가지고 있다. 이 잠아가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잠아는 줄기가 완전한 생장을 하는 동안 동면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줄기의 생장점으로 부터 가장 먼곳에 많이 생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잠아의 흔적은 나무를 잘라버린 그루터기 주변에서 나온 가지이다.
 
나무는 잠아라는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생명 장치를 훌륭하게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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